[솔부] SAVIOR 05
솔부] SAVIOR 05
W. 콤타 (@comtar34)
* *
전과 달리 깔끔히 정리된 연구실이 눈에 들어왔다. 천둥치듯 울리던 큰 소음은 어디가고, 흐트러진 것 하나 없이 그가 읽던 서적과 자료들이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뭐야. 음습한 표정으로 잔뜩 겁을 주더니 결국, 여느 때와 같은 풍경으로 다시금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방 깔끔한 거 가지고 놀라지 말라 한 거야? 제 머리 위의 물음표는 가볍게 무시한 채로, 한솔은 열려있는 문고리를 잽싸게 잡아 당겼다. 닫힌 것에 더해 철컥 잠금 소리까지 들려온 순간, 이젠 궁금함 보단 평소 그의 연구 행적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조용히 긴장 어린 숨을 내뱉었다. 설마... 아니지? 범죄 영화에나 나올 장면들이 스멀스멀 전두엽을 두드리는데, 부디 ‘어떻게 한솔 씨가’ 같은 무서운 대사가 튀어나오지 않길 바랐다.
뭔가 해답을 바라보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아도 해답을 내려 줄 눈치는 아니었다. 한솔은 말없이 책상 쪽으로 몸을 기댔고 저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만 동그라니 움직였다. 어쩌려고 이렇게 분위기까지 잡는 건데. 초조한 느낌에 입술을 물어뜯는 와중, 한솔의 넓은 어깨 너머로 다른 방엔 없던 작은 문 하나가 보였다. 커튼에 반 이상 가려져 있었지만 분명 고개를 숙이면 성인 남자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금속 재질의 문이 있었다.
이게 뭐야? 방에 왜 이런 게 있어? 목구멍 언저리에서 춤추는 물음표들은 마음만 먹으면 가뿐히 식도 쯤 뚫어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벙 찐 채로 상황 파악에 몰두한 사이 한솔은 엉덩이를 떼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냥 한솔이 얼굴을 들이밀었을 뿐인데 별 보안해제 없이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보통 건물의 센서 감지기와는 다른, 그만을 인식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지만, 제 머릿속에는 해괴망측한 3류 영화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단순히 철로만 만들어진 건 아닌 듯 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데, 밑으로 향하는 계단들이 마치 괴물의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연구소 내부에 이런 장치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하물며 다른 이들도 아닌 한솔의 방이라니, 절대 관여해선 안 될 일에 엮인 것 같다고 본능 위로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비장한 얼굴로 서있는 저를 흘끗 보고는 한솔은 빛 하나 없는 계단을 곧장 내려갔다. 따라가도 괜찮은 걸까. 보통 이런 시나리오의 영화를 보면 혼자 남는 순간 죽게 되던데.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는 실험쥐에게 육중한 문은 다시 입을 닫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틈에서 새어나오던 빛마저 사라지니 정말이지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만 싶었다.
뚜벅이는 한솔의 신발소리마저 작아지는데 여기 혼자 남았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세시대 감옥 같은 계단에서 유골로 발견되어도 그가 입을 다물면 제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어버릴 것 아닌가. 그냥 이대로 112에 전화를 걸어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자신의 동료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하는 것이 한순간의 고민으로 이뤄질 행동은 아니었다. 비상 통화의 꿈은 잠시 미뤄두고 휴대폰 손전등을 등대 삼아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참으로 겁이 났다. 처음 겪어보는 미지에 대한 공포감, 언젠가 한솔을 책망하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 제게 조금이라도 안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멀리 도망가 버려서, 지금은 벽을 짚은 채 어둠 속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무서웠어요.”
벽과 벽에 부딪힌 음파들이 커다란 형태가 되어 제게 다가온다. 한솔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한편으론 아주 크게 들렸다. 이 계단의 끝이 어디쯤일까 가늠해보는 와중 낯선 바닥이 발에 먼저 닿아왔다. 연구소의 바닥과는 전혀 다른 재질로, 제가 있는 계단부터 한솔이 서있는 방 끝까지를 드넓게 뒤덮고 있었다. 눈을 돌리기 겁났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깨닫는 순간, 두 번 다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될 까봐 두려움이 일었다. 그러나 우리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단 한 곳이 아닌 공간의 사방을 읽을 수 있게끔 진화되어왔다. 원치 않게 넓어진 제 시야가 이를 증명하듯, 머리로 전달되는 공간의 이미지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기스럽고 이질적이었다. 연구실과 비슷한 배치를 보이지만 본 적 없는 낯선 장비들과 한솔의 옆에 서있는 정체모를 무언가. 어지럽게 놓인 자료들과 구동되는 기계들 사이로 그는 고개만 숙인 채 서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수조와 같았다. 언제든 내부를 볼 수 있게끔 윗부분은 뚫려 있었고 투명한 벽면 옆으로 정체 모를 호스들이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었다. 그 호스들은 모두 하나의 장치에게 귀결되었는데, 누가 봐도 사람의 손이 자주 닿는 중앙제어장치임을 알 수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한솔은 곧 교수형이라도 당할 죄수처럼 자신의 거대한 몸뚱어리를 움츠렸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푸른 액체로 가득한 곳 내부에는 거대한 덩어리 하나가 유유히 유영하고 있었다. 무언가 들어있다는 사실에서 손과 발끝이 보인다는 인식으로 전환되기까지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걸 뒤늦게 실감했다. 인간의 사고는 빛과 같아서, 원하던 원치 않던 자신의 의지와 반하게 두뇌는 멈추지 않고 한 쪽 방향으로 내달린다. 소름이 끼쳤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극도의 공포감이 제 발목을 집어 삼켰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집어삼키기 전에 어서 이 지옥을 벗어나야 했지만, 도망쳐야 한다는 이성과 이것이 대체 무엇인지 확인해 봐야한다는 모순된 정의감이 무게 추처럼 제 팔을 붙들었다.
굳어버린 허벅지를 찔러대며 억지로 발을 끌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명확해지는 실루엣에 맥박이 뛰고 숨이 버거워졌다. 거대한 호흡장치가 붙은 얼굴과 달리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 시체처럼 창백한 모습을 한 채로 그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아니, 애초에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지만, 굳게 닫힌 눈꺼풀 틈으로 그가 살아있다는 정체모를 확신을 느꼈다.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갇혀있던 건지, 길게 자란 손톱과 불어버린 발가락들이 그의 생을 대변했다. 푸른 머리에 짙은 눈썹,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신비로운 외관으로 모두를 속이고 영원과 같은 잠에 취해있었다. 당신은 미쳤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한솔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제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일리 없다고 수십 수백 번을 되뇌어 봐도, 이성이 판단내린 정답은 종국까지 하나였다. 어쩌면 그는 제가 지금껏 알아왔던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자, 공포와 혐오가 범벅된 감정 쓰레기를 당신의 머리 위로 쏟아 부었다.
이건 한솔, 당신이었다.
* *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솔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제 머릿속을 다 들여다본 사람처럼, 그간 삭혀둔 감정들을 쉼 없이 토해냈다. 사람은 이렇게도 처참히 무너질 수 있구나-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모습이, 마치 광기에 휩싸인 사람 같았다.
“나도, 나도 내가 무서워요. 매일 마주하는 이 상황을 나조차도 믿을 수가 없어서, 죽고 싶을 만큼 겁난단 말이에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한솔은 제가 서있는 수조 곁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향한 연민에 갇혀 제 분 하나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 말고도 그의 모노드라마 자체가 처참히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분노와 슬픔이 뒤바뀌는 만화경 속에서 그는 그 스스로를 잃고 있었다.
“당신한테 아무 것도 보여줄 수 없었던 이유가”
“...”
“나는 더 이상 미움 받고 싶지 않은데, 승관 씨가 이걸 본다면 나한테.. 나한테... ”
“...”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해.”
“...이게 뭔데요. 지금 당신이, 뭘 하고 있는 건데요.”
안타깝게도 당신의 푸념을 들어줄 시간은 없다. 평소보다 그는 훨씬 지쳐보였고 저를 미워하지 말라는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왔지만, 지금은 당신이 저지른 이 모든 죄악을 세상에 고하는 것이 먼저였다. 한솔은 첫 글자 내뱉는 것조차 힘겨워보였다. 늘 부드러운 미소를 건네던 붉은 입은 하얗게 질려 떨고 있기만 한데, 자신조차 마주하지 못한 과오를 남에게 전할 용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벽을 짚은 손바닥 밑으로 축축한 습기가 어린다. 나와 함께 했던 존재가 전부 거짓임을 알게 된다면, 우린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모두 가짜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아이처럼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신을 조롱한 세상에 갖은 원망과 비난을 쏟아야 했다. 당신은 나를 주저앉게끔 만들었고 슬픔에 몸조차 가눌 수 없게끔 조롱했지만, 눈앞의 창백한 얼굴은 나의 원망스런 감정마저도 죄책감으로 바꿔버렸다. 버거운 현실에 나는 눈물을 흘릴 여유조차 없었는데, 한솔은 벌써부터 제게 사죄와 구원을 외쳐댔다. 이기적인 사람이다 당신은.
5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연구소에 처박혀 지내면서, 한솔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훌륭한 요람을 완성해냈다. 한 쪽 구석으로 제 죄악감을 감춰두고선 사람들의 눈을 속이며 이런 끔찍한 장난을 치고 있었던 거다. 이것이 본인의 의지이든 타인의 명령에서 비롯된 것이든, 음침한 지하실 속에 사람을 처박고 수조로 가둬둔 비인륜적인 행위를 애써 이해해주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가장 끔찍하고 불온한 존재를 향한 얼굴을, 나는 차마 숨길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인 거예요?”
“승관씨 눈에는 그렇게 보여요?”
“뭐?”
“다행이네요. 그래도 반은 성공한 것 같아서”
“...”
“인공생명, 로봇? 아니면 클론?”
“...”
“난 아직도 이걸 뭐라 불러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것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사람을... 만든 거예요?”
“... 글쎄요, 그건 어디까지나 신의 영역이니까요.”
그는 침울함과 미묘함이 범벅된 표정으로 답을 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약 연구를 하고 세미나에 몫 매는 그런 평범한 연구원이었어요. 당신처럼 선임들 뒷바라지에 시달리며 언제쯤 온전한 내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한없이 과대평가하면서 말이에요. 열정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던 저한테, 상임위원으로부터 프로젝트를 하나 맡아보지 않겠냐는 권유가 들어왔어요. 어린 나는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해 득달같이 받아 물었지만, 보조 연구원이겠거니 하고 들어간 곳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고 내려진 지시는 너무도 터무니없었죠. 신인류. 인류를 대체할 또 하나의 인류를 만들어내라는 명령이었어요. 말이야 쉬웠지 사람이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웃기는 일이죠, 인공 장기로 죽은 사람마저 살려내는 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몸은 불가침 영역으로 여긴다는 게요. 늦게나마 양심을 이끌어 연구를 거부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절대 주워 담을 수 없었어요.
모든 연구 지원이 그렇듯 단 기간 내에 성과를 내보이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았고, 결국 나는 막대한 비용과 단 한 명의 조수를 두고 프로젝트에 착수했어요. 수년의 세월에 걸쳐 지금까지 연구를 이끌어왔지만 제가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상부는 점차 많은 것들을 요구하더군요. 인간에 가깝지만 절대 인간과 같지 않게. 그제야 알았어요. 내가 만들고 있는 게 더 이상 연구소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요. 이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어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걸, 스스로도 알아버린 거예요.
“차라리 도망이라도 치지 그랬어요. 더는 못하겠다고 울며불며 도망이라도 가지,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 괴물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 줄 알고 도망을 쳐요.”
“...”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죽으면, 저 많은 연구 자료들을 전부 어디다 갖다 쓰겠어요?”
“...”
“또 다른 연구자를 찾겠죠.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에요.”
내가 만든 재앙은 내가 책임져야 해요. 한솔은 하염없이 수조 안만 바라보았다. 말을 나누고 있는 대상은 저였지만 마치 또 다른 자신을 향해 사죄하는 모습이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의 죄를 고했지만 저는 아직도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언젠가, 제가 쌓아왔던 모든 일들이 실은 엇나간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 한다면, 그 때의 상실감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한솔이 뱉은 말들은 부메랑이 되어 제게 되돌아왔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체 우리들은 누구란 말인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들어왔으며 어떤 목적으로 그 수많은 자료들을 불태웠단 말인가. 존재에 대한 의문은 마주한 현실을 향해 강한 불신을 만들어냈다.
한솔은 제게 이 일을 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부의 죄책감을 덜었을지 몰랐다. 혹은 일부 자신의 죄가 구원되었을지 모른다고, 그리 자위했을 수도 있다. 생각과 감정이 파벌싸움을 벌이는 머릿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나는 너의 죄책감을 되받아 불신을 얻었고 나에게서 비롯된 안정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아련함과 후련함이 가득한 한솔의 눈빛을 보며, 그를 믿고 싶다는 마음과 거짓 입술을 향한 불신이 몸속에서 휘몰아쳤다. 나는 무엇을 향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걸까. 너는 절대 구원을 입에 담아선 안 된다. 눈앞의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됐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망령을 지우지 못한 제 값싼 동정이 당신의 유일한 위로가 되길 바랐다.
-
나의 구원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