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logic
[솔부] HIT 上 본문
엄지와 검지 자국 그대로 글이 번진 눅눅한 종이를, 원우는 용케도 쥐락펴락 하며 부채로 써먹었다. 이제는 닳을 만큼 닳아서 얼룩덜룩한 폐지인데도 꼭 그것만을 고집해서, 누가 보면 세상 중요한 일급 문서를 끼고 사는 줄 안다. 지랄 염병. 또 빡구 먹었다며 승질 내던 중 출동하는 바람에, 원우는 엉겁결에 운전대까지 쥐고 올라탔었다. 저깟 종이쪼가리도 감동실화 스토리가 있는데 나는 왜? 원우가 손으로 훔친 콧기름을 바지에 대충 닦자 승관은 더러운 짓 좀 말라며 성질을 부렸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옆에 있는 사람마저 저 지랄을 떨고 있으니 승관은 관통하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 좀 괜찮아질만하면 가렸던 해가 엿 먹으라는 듯 고개를 내밀고, 한풀 좀 꺾였다 싶어 몸이라도 비틀면 내가 언제였던가- 하고 가슴골 사이로 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 좆같다 진짜. 승관은 대가리가 두 쪽 나긴 싫어서 그냥 속으로만 욕을 곱씹었다.
시동 걸 때마다 엔진이 터지진 않을까 가슴 졸여야하는 구형 차 안에서 홀애비 냄새 풍기는 사내 둘이 8월 한여름을 버텨야했다. 우아하게 아메리카노 한 잔 빨면서 일하면 어디가 덧나? 만날 다 식은 콜라 따위를 손에 쥐어주는 원우에게 승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어컨 좀 틀자고 징징거렸다. 아 형님, 제발 에어컨 좀 틀면 안 돼요? 근무고 나발이고 내가 먼저 뒤지겠네. 습기 먹은 바람인데 열이 뭐 얼마나 식냐고 주댕이 대빨 내민 승관이 비죽거려도, 원우는 늘 그렇듯 운전대나 두어 번 두드릴 뿐 말을 말았다. 귀찮은 것을 상대하기 싫을 때 나오는 그만의 못된 버릇이었다. 승관은 골이 울려서, 안전벨트가 툭 튀어나온 차체에 대가리를 내려쳤다. 사람 살려!
영화다 뭐다 허구한 날 매체에 노출되어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는지 안다. 아무리 음습한 골목이라도 화질 낮은 반구형 카메라 하나쯤은 전봇대 언저리에 달려있으니, 이 나라는 프라이버시도 없냐며 언성 높이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해될 수준이었다. 얘기가 없잖아 샜지만 요점은 그 CCTV가 이번에도 원우와 승관의 발등에 불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며칠 전 용산에서 사람 하나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남자로,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며 나가놓고는 예정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부모가 급하게 전화를 건 일이었다. 혹시 주변 사람들 연락은 해보셨나요? 신고 직전까지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지만 그런 여행은 가기로 한 적이 없었다며, 전화기도 꺼진 채로 홀연히 사라졌다는 울음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왔다. 어머님, 일단 진정하시고 00지구 쪽으로 와주세요. 어깨와 볼 사이로 전화기를 끼고 있던 경위는 믹스 커피를 채우고 있던 승관에게 원우와 함께 조사 좀 나가보라며 위치를 적어주었다.
단순 가출이라고 생각하기엔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준비해왔던 대학에 합격하고 예치금까지 넣어둔 상태로, 남은 기간 동안 여행도 다니고 토익 공부도 할 거라며 웃는 얼굴로 집을 나섰다고 한다. 애인에게 차이는 둥 심경의 변화를 겪은 일도 없었는데 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지, 부모는 밤이 갈수록 뒷목이 서늘해지는 뉴스들에 눈물을 쏟았다. 원우는 물고 있던 빵을 입 안에 우겨넣고 차 키를 집어 들었다. 그 근방은 다 둘러보고 올게요. 마지막으로 내려준 곳이 어디래요? 늘어난 흰 티셔츠 아래 얇은 팔이 휘적거리는, 미덥지 않은 몸과 다르게 원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지도를 훑었다.
그렇게 원우와 승관은 주말 휴일도 반납한 채로, 에어컨이 고장난 구형 차를 몰며 용산 일대를 돌아다녔다. 짐이 무거워 차로 데려다 줬다는 용산역을 시작으로 근방의 쇼핑몰과 터미널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혹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돌아다닌 젊은 남성을 본 적이 없냐고, 가판대에 올려진 음료수를 사며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상인들은 쭉 째진 입으로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냐며 원우에게 신경질을 부렸는데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사람이 죽었냐며 되도 않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 거 아니에요. 원우가 지갑을 집어넣는 순간까지 들들 볶아대는 통에 승관이 그만 타라며 소리를 질러야만 상황이 종결 났다.
“뭐 좋은 일이라고”
원우가 벨트를 매자 승관은 기다렸다는 듯 툴툴거렸다. 정말 말 그대로, 그게 뭐 좋은 일이라고 이것저것 물어보는지. 피부를 탈로 쓴, 같은 사람이라지만, 이 일을 하다보면 정말 이게 하늘 아래 숨 쉬는 동족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범인이든 목격자든.
“궁금한가 보지. 일일이 신경쓰면 너만 피곤해.”
“...”
“현식이 형한테 연락 넣어. CCTV 좀 조회해봐야겠다.”
원우는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주차장을 벗어나 사거리로 빠져 나오자 한낮임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창밖으로 무단 횡단을 하는 학생들에게 원우가 주의를 주는 사이, 승관은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아스팔트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액정을 켰다.
* *
은행과 상점에 걸린 CCTV들을 따라가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음 날, 승관과 원우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관할서와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던 은행 점장은 공문서를 확인하고는 군말 않고 녹화본을 보여주었다. 아들이 용산역에 도착했다던 그 날로 시간을 돌리자 직장인과는 다르게 큰 행낭을 멘 남성이 보도블록 위를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원우와 승관은 시간을 배속하며 남자의 동선을 지켜보았다. 그는 예약했다던 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이동하는 대신, 그대로 직진하며 대로변을 따라 이동했다. 원우는 슬그머니 눈살을 찌푸렸다.
대로변 블록마다, 간판 위에 감시 카메라가 달린 가게들을 일일이 찾아 다녔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며 겁을 먹는 주인들에게 승관은 별 일 아닌 가출 사건이라 에둘러 말했다. 그들이 보여준 영상들을 일일이 이어가며 남자가 움직인 동선을 원우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큰 도로를 빠져나와 우측 샛길로 빠지고, 곧장 모텔촌으로 빠진 건가? 여기 그런 데가 있어요? 승관이 당황한 목소리로 묻자 원우가 피식 웃었다. 흔히들 하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였지만 승관은 조만간 단속 한 번 빡세게 돌겠다는 생각이 슥 들었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산 원우는 다시 차를 몰아 남자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갔다. 도로가 비좁긴 해도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내려준 역부터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였고, 무엇보다 누군가 그에게 상해를 입혔거나 납치를 했다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다. 마지막까지 안심해선 안 되었지만 그렇게 위험한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승관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근처 시계방에 들러 다시 남자의 자취를 좇았다. 글이 잘 보이지 않던 50대 남성은 원우가 들이민 종이를 멀찍이서, 가까이서 몇 번이고 들여다보더니 이내 툴툴 거리며 감시 카메라를 보여주었다. 남자는 시계방 맞은편에 있는 상가 건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고 몇 시간이 지나도 나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지켜보던 승관은 옆에 서있던 남성에게 저기 젊은이들이 갈만한 곳이 있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남자는 젊은 새끼들을 제가 알 길이 있냐며 고개를 저었다.
“가보자. 둘러보기만 하면 얼마 안 걸릴 거야.”
미용실이랑 떡집이랑... 그리고 뭐가 있더라? 승관에게 대답해주던 아저씨는 부리나케 가게를 나서는 원우에게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건넸다. 아, 형님! 같이 가요! 뒤도 안 보고 나서는 원우를 다급하게 부르던 승관은 말을 끊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지만 급한 그들의 사정을 이해했는지 빨리 가보라며 승관을 등 떠밀었다.
“특별한 건 없는 거 같던데요. 역세권도 아니라서 젊은 애들이 좋아할 만한 술집도 없고”
“술집이면 굳이 이런 곳으로 왔겠어? 대학가에 널린 게 물장산데”
원우는 남자가 밟았던 상가 계단을 그대로 따라 올랐다. 승관은 원우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좌우로 나열된 상가들을 놓치지 않고 훑어보았다. 아까 시계방 아저씨가 말한 대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게들이 1층에 가득했고 불법으로 운영되는 것 같은 가게들은 없었다. 좋게 보면 그가 안전하다는 것이겠지만 나쁘게 보면 20대 젊은이가 숨어들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최악의 수가 승관의 머릿속을 두드렸다.
“4층까지 있는 것 같아. 나 화장실부터 돌아볼 테니까 넌 2층부터 위로 올라가.”
“알았어요. 폰 무음으로 해놔요.”
“너나”
원우는 승관의 걱정을 맞받아치고는 상가 끝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문이 잠겨 있던지 몇 번 두리번거리다 앞쪽에 있는 가게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겁도 없다. 본인이나 잘 챙기지. 승관은 원우가 들어간 가게를 잠깐 보다가 2층으로 올라섰다. 은행이 있는지 제복을 입은 여성들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몰려 나왔다.
* *
2층에 위치한 은행은 크게 둘러볼 것이 없었다. 화장실은 원우가 본다고 했으니 둘째 치고, 내부에 들어서자 번호표를 뽑는 아이부터 돋보기를 꺼내드는 할아버지까지 평소에 보던 일상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에어컨 바람 아래서 땀을 식히던 사람들이 제 순서가 되면 짐을 싸들고 은행 직원 앞으로 갔다. 승관이 대기석에 앉지도 않고 가만히 사람들을 쳐다보자 위화감을 느낀 보안 요원이 그의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승관은 말없이 지갑을 꺼내 보였고 남성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읽고 자리를 옮겼다. 10분 정도 은행 내부를 둘러보았다. 대기석과 접수처는 넓게 트여 있어 사람이 숨을만한 공간은 없었고 지점장이 있는 방과 창고 공간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곳은 없었다. 대개의 은행들은 접수처 뒤로 공간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들어가 보기에는 곤란했다. 얼추 들러본 승관은 유리문을 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아래 가게들과 다르게 통유리로 된 가게는 없었다. 손님이 있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파리만 날리는 치킨 집과 머리를 염색하고 있는 여성이 앉아있는 미용실이 보였다. 부부가 운영 중인 치킨 집에 들어간 승관은 이런 남성을 본 적이 없냐며 뒷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들었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남자는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며 신나하는 것 같았는데, 이내 승관의 목적이 식사가 아니란 것을 알고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큰 짐을 들고 있었으면 어디 갔다 오냐고 물어 라도 봤을 텐데, 근래 며칠 간 그런 젊은 손님은 온 적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안에서 닭을 튀기고 있던 여자도 이마에 땀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휴, 이렇게 어린 친구들은 우리 가게 잘 안 와요. 저기 큰 대로변에 있는 체인점들이나 가지.”
“이 상가에 젊은 친구들이 갈 만한 곳이 있나요?”
“글쎄. 딱히 놀만한 곳은 없는데”
장갑을 벗고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던 여자는 뭔가 떠올랐는지 무릎을 탁 치며 옆쪽을 가리켰다.
“아! 저기 옆에, 그, 문신인가 하는 젊은 남자 있잖아.”
“아- 그 머리 좀 긴 여리여리한 사람?”
“그래. 그 집에 가끔 젊은 애들 들락날락 하잖아. 저번에도 어떤 여자 왔다가는 거 봤어.”
문신이요? 승관이 묻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정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요즘 애들은 타... 뭐시기 하던데 하여튼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오른쪽으로 가면 시커먼 가게가 하나 있어. 젊은 남자가 운영하는 거 같은데 자기 말로는 그림 그리는 거 한다 그러더라고. 이런 구석진 상가에서 잘 될까 했는데 간간히 젊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더라고. 나이든 사람도 가아끔 보이고. 잘 모르겠으면 거기 가서도 물어봐. 여자는 가게 문을 열고 승관이 가야할 방향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화장실보다 더 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돼요. 일 끝나면 여기서 닭이나 먹고 가. 젊은 친구가 많이 말랐네.
승관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는 여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회색 대리석에 파리 시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광 조명은 다 똑같은데 왜 저곳에서만 음습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지, 승관은 정체를 알 수 없다던 낯선 남자에게 벌써부터 보이지 않는 칼날을 들이밀었다. 문이 굳게 닫힌 여자 화장실을 오른쪽에 두고 몸을 돌리자 이제껏 보았던 떡집이나 치킨 집과 다르게 세련된 영어 문구가 적힌 검은 문이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가게가 있을 자리까지 모두 검은 배색지로 도배를 해놓고는 그 누구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해두었다. 승관은 원우에게 3층에 있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별 일 있겠어.
승관은 미시오라 적힌 문을 당겼다. 안쪽에 달려있던 종들이 정신없이 울리고 조명이 어두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 *
자주 맡은 향기가 승관의 코에 닿았다. 깊게 들이마시면 조금 상쾌한 느낌이 드는 담배. 원우가 피던 것과 비슷한 향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환기는 따로 하는지 창문들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더 막아둔 듯 했다. 천장 쪽이 조금 희뿌옇게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승관이 서있는 입구 쪽으로 연기가 훅 뿜어져 왔다. 아 뭔데. 승관이 콜록거리자 허스키 한 목소리의 남자가 말을 던졌다.
“어디하러 왔어?”
“네?”
“타투하러 온 거 아냐? 어디 할 거냐에 따라 값이 달라.”
가까이서 본 남자는 아저씨가 말한 독특함이 무엇인지 잘 알게 해주는 외형이었다. 골격 자체가 작은 건지 승관보다 얇은 팔다리에 귀와 얼굴에는 피어싱을 잔뜩 뚫고 있었다. 구멍마다 죄 검은 핀셋 같은 것을 꼽아 놔서 승관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목 아래로는 난초인지 넝쿨인지로 보이는 그림을 잔뜩 새겨놓았고 팔목과 팔뚝 안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와 용들이 그려져 있었다. 남자는 승관의 시선을 느꼈는지 팔을 앞쪽으로 내밀며 이렇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좀 비쌀 거라는 남자의 말에 승관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머리를 팽팽 굴렸다.
“저, 민호 소개 받고 왔는데요.”
“민호? 걔가 누군데?”
“눈썹 좀 진하고 머리 짧은 남자애요. 며칠 전에 여기 왔을 텐데”
승관은 목 뒤로 흐르는 땀이 티나지 않길 바랐다. 남자는 물고 있던 담배만 뻑뻑 피며 말없이 승관을 훑어 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이 역력한 승관은 괘념치 않고 그가 숨기고 있는 의도까지 다 간파해낼 사람처럼 또렷한 시선으로 그를 훑어 내렸다. 제발 한 번만 걸려라. 승관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그 친구의 이름을 팔아넘긴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순순히 제 의도를 밝히면 안 될 것 같은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평범한 타투 가게라면 그냥 할인 받으려나보다 하고 말겠지만 어쩐지 이 남자의 반응은 그런 류의 것이 아니었다. 예술 하는 놈들은 죄 미쳤다는 걸 알면서도 이 남자의 반응은 어쩐지 얼마 되지도 않는 승관의 촉을 자극했다. 평범한 새끼가 아닐 것 같다는 느낌. 원우가 알면 뒤통수를 다섯 대 정도는 내려쳤겠지만 승관은 어쩐지, 정말 어째서인지, 경찰인 걸 밝혀봤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걔랑 최근에 연락한 적 있어?”
“아니요. 한 달 전인가 술자리에서 말해줬어요. 여기서 하면 괜찮다고”
뭘 하는데 미친놈아. 승관은 제가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지, 술술 내뱉는 주댕이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런 방면으로 재주가 있는 걸 알았다면 그냥 고시원에 처박혀만 있지 말 걸. 연기 너머로 미용실에서나 볼 법한 카트와 촌스러운 색깔의 파일들이 얹어진 책상이 보였다. 타투에 사용되는 것인지 잉크통 같은 것들도 보였다. 설마 거짓말 한 거 들켰다고 칼로 찌르고 그러진 않겠지. 승관은 품 안에 감춰둔 총이 가슴팍에 잘 닿아있는지 몸을 슬쩍 비틀어 보았다. 남자는 필터에 다다른 담배를 버리고 다시 새 개피를 꺼내들었다. 이 꼴초 새끼는 손님 앞에서 왜 이러는 거야?
“아무한테도 말 안 한 줄 알았는데”
“민호한테 아무는 아닌 사람이라서요.”
남자는 승관의 말에 미친놈처럼 웃었다.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냐? 너 같은 애들을 뭐라 그러더라. 그...자.. 자의식 과잉? 뭐 그런 거라던데. 남자는 담배를 이빨 사이로 고정한 채 깔깔 거리다 가게 안으로 승관을 이끌었다. 안 걸린건가? 가게 안쪽에는 진료실에나 있을 법한 침상 의자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그 위로 큰 조명이 걸려 있었고, 사람들이 덮는 것인지 푸른 담요 몇 개가 대충 구겨져 있었다. 파일철 안에는 남자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이 엮여 있었다. 승관이 슬쩍 보려고 하자 남자는 이쪽으로 오라며 커튼 뒤쪽을 가리켰다.
“관심 있으면 나중에 해 줄게. 그 정도는 서비스로 해줄 수 있어.”
거 자비심도 넘치네. 승관이 대답을 하든 안 하든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남자와 함께 커튼 안으로 들어서자 평범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고 부엌은 아닌 것 같은 작은 방임에도 커다란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승관은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남자는 자신의 맞은 편에 승관을 앉혔다. 긴장 풀어.
승관이 있는 방은 아까 곳보다 조명이 어두웠다. 담배 연기가 자욱해서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더 어둡게 느껴졌다. 남자는 책장에 꽂힌 서류철을 하나 들고 왔다. 타투를 하는 예술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색으로 된 하드 커버였다. 남자는 자신을 예명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디에잇. 여기 사람들은 다 나를 그 이름으로 불러.”
“저는 승관입니다. 부 승관이요.”
“독특한 이름이네. 돈은 준비된 거고?”
돈이라는 말에 승관은 살짝 멍해졌다. 돈을 운운하는 타투 가게라니 진짜 뒤가 구리지 않은가? 이제라도 정체를 밝힐까 고민하는 사이 디에잇은 쥐고 있던 서류철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빈 칸마다 서명을 하게끔 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깨알 같은 글씨로 계약 내용이 적혀있었다. 승관은 입을 닫고 급하게 서류를 훑었다.
[수술 중 발생할 수 있는 의료 사고 가능성을 모두 숙지]
[총 시가에서 선납 금액을 제외한 비용만큼을 현찰로 후납]
[치료 및 회복 비용은 수술 금액과 별도]
[관련 내용을 언급할 시-]
승관이 종이를 훑어보는 사이 남자는 담배를 끄고 냉장고에 기대어 섰다. 문신이 다 드러나도록 걸친 검은 나시와 혀에 박힌 작은 피어싱. 승관이 올려다보는 시선에도 남자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는 승관이 긴장했다고 생각했는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승관은 그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한참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눈치 없는 멍청이인 척 하기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인 척 찾아오지 않았나. 그러나 이내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너는 뭐야?”
“...”
“긴장하지 마. 너 같은 애들 한 둘 아니었으니까.”
“...”
“싫다면 지금 그만 둬도 좋아. 서류에 사인하기 전까진 비용 청구 안 할 테니까”
“제가 사인하면요?”
“그럼 돈 내고 자빠지는 거지. 당연한 걸 뭘 물어”
남자는 등을 떼고 자신이 기대어 섰던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만약 그 아저씨와 아줌마 집에서 치킨을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었다면 아마 이 자리에서 다 게워냈을지 모른다고 승관은 생각했다. 콜라나 들이부은 빈속임에도 이렇게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보면, 비위고 나발이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얼마나 징그러운 것인지 반증해주는 것 같았다. 본가였다면 오징어젓갈이나 장아찌가 잔뜩 담겨 있어야 할 가전제품 안에는 성인 손바닥 만한 유리병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저 흐느적거리는 것이 뭔가 싶었는데 눈을 살짝 찌푸린 순간 원치 않아도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승관이 우읍- 소리를 내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상중하 세 칸으로 구분된 유리병들 안에는 각기 다른 것들이 둥둥 담겨 떠다니고 있었다. 승관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괜찮아. 처음 볼 땐 다들 놀라더라. 근데 이거 달려고 여기 온 거 아냐, 너?”
“...”
“돈만 있으면 돼. 그럼 다 해줄 수 있어.”
“...”
“넌 무슨 성향이야? 어떤 걸 달고 싶어? 아니면 떼고 싶은 거야?”
안색이 파리해진 승관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그맣게 속삭였다. 이 바보 같은 곳에서 빨리 도망쳐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순순히 입을 열고 만 것은, 아마 뇌 속을 뒤섞어버리는 지독한 연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오메가요.”
“아, 그럼 떼고 싶은 거야? 아니면 덧붙여?”
남자는 가장 아래 칸에 있는 유리병들을 가리켰다. 거기엔 승관에게선 절대 구현될 수 없는 두꺼운 살덩어리들이 하나씩 담겨있었다. 끝부분이 유난히 눈에 띄는 저것은 승관이 이겨 먹기 위해 한없이 애를 써야했던 극복 대상이자 부정할 수 없는 한계점이었다. 점점 더 구역감이 몰려왔다.
“여기 있는 게 싫으면 새 걸로 구해다 줄게. 값이 더 비싸지만 싱싱한 건 보장할 수 있어. 아는 놈이 재깍재깍 구해다 주거든.”
“아는 놈이요?”
“같이 일하는 새낀데 원한다면 연결해줄 수 있어.”
“누군데요?”
남자는 승관이 이것들에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냉기가 나오는 문을 툭하니 닫았다. 안에서 병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둘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승관은 사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까처럼 다시 편하게 기대어 선 디에잇은 펜을 쥐고 있는 승관의 모습을 웃는 얼굴로 지켜보았다. 미친 새끼라고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승관은 겨우 삼켜내었다.
“이름은 버논이고 나이는 나도 몰라. 생긴 건 비슷해보여서 같이 일하고 있어. 너랑 달리 알파 새끼고 축복 받은 얼굴로 이딴 거나 처 구하는 일을 하고 있지. 궁금한 게 더 있으면 직접 물어봐.”
디에잇은 승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제서야 승관은 자신이 어떤 곳에 맨 몸으로 기어들어온 것인지 잘 알게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박봉에 고생하는 나이 어린 오메가. 그리고 너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서약서. 승관이 잠시 고민해보겠다며 펜 뚜껑을 닫자 남자는 테이블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승관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 맘 잘 알지. 나도 한 때 고생 했는걸.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잖아? 너도 그러고 싶지 않아?
“기억해 봐. 네가 오메가라서 겪어야 했던 그 좆같은 현실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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