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Atlantis (10)
No logic
10.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우중충한 하늘은 며칠을 굶주린 짐승마냥 줄기차게 으르렁 거렸다. 딱히 빗방울이 내리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주춤하게 만든다. 날이 밝다면 밖이라도 나가려 했던 저의 계획은 시작도 못한 채 접어야 했다.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함께 길이라도 거닐자던 작은 바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시하게 오그라들었다. 어두워. 멍하니 바라만 보던 것이 꽤 길어졌는지 창문엔 어느새 제 왼쪽 손바닥이 하얗게 눌려있다. 뒤를 돌자, 아까부터 소파에만 기대있던 남자의 뒷모습이 한 없이 무력하고 한편으론 모든 게 귀찮은 듯 보인다. 바닥을 가르는 무거운 분위기는 구름 위가 아닌 거실 바닥에 내려앉은 걸까...
09.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돌아가면 가만 두지 않을 걸.”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남자는 별 말없이 실실 웃기만 한다. 처음부터 우연한 사고라고만 얘길 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지금에선 어떤 것이든 남자를 도울 단서가 될 수 있을 거다.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는 싱크대에 편하게 기대어 섰다. 답을 요구하는 제 눈짓에도 계속 어벙한 미소만을 짓는다. 사고를 쳤다라. 언뜻 듣기만 해도 딱히 순탄한 길은 아니었던 것 같으니, 과연 남자의 말을 신뢰해도 되는 건지 걱정부터 앞선다. 바닷가에서 마주치던 그 순간도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소리 소문 없이 물속을 기어 나오던 의문의 남자. 멍하니 수평선만 바라..
08.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신전 안쪽에 이런 방이 하나 있어. 지금은 못 들어가고 어렸을 때 몇 번 가봤거든.” “...” “좀 작고 낡은 방인데 이런 책들이 엄청 많아. 방바닥에도 이만큼씩 쌓여 있어.” “...” “네 할아버지는 아마 아닐 거야. 내가 태어나기 수세기 전의 일이니까.” 남자는 책등을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와 비슷한 방이 아틀라스에도 있다면 누군가 과거에 그 곳을 방문했었다는 의미일까. 색이 바랜 종이와 읽기 힘들 정도로 헤져버린 낡은 책들. 과거를 더듬는 남자의 말들이 드문드문 제 머리 위로 그려졌다. 따듯한 기억이었을까, 시간을 거스른 그의 얼굴이 퍽 즐거워 보인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 제 행동에 둥실거리던 먼지들이 다시 땅..
07.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여기? 여기다 놓으라고?” “이쪽에다가요. 거긴 책들 넣어둘 거라.” 작은 전구들을 양 손에 든 채로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 많은 것들이 땅바닥과 인사했다간 아침부터 팔목과 허리가 남아나지 않을 거다. 불안해 보이는 남자를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지만 저렇게 해맑은 얼굴로 제안하는 선의를 거절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손이 많아서 고맙긴 하다만 진전 반 후퇴 반이니 이걸 어찌 좋다고만 말할 수 있으랴. 눈만 돌리면 물건들을 헤집어 놓는 탓에 하나하나 옆에서 도와주고 치워주고를 무한으로 반복 중이다. 옆에서 앉아만 있는 게 미안했던지 저가 돕겠다며 두 눈을 반짝이는데 모든 게 놀이처럼 보이는 7살..
06.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작은 액자와 장식품들 따위가 잔뜩 널려 있다. 빨간 테이블보 위로 새를 본 뜬 브로치, 검 모양의 열쇠고리 등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명화가 인쇄된 엽서 옆으로 카메라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처음 보는 기계였을까 남자는 검은색 카메라를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주인이 건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내려놓기는 했다만. 저런 것들은 어디다 쓰는 거냐며 묻는 남자의 목소리는 즐거움으로 들떠 있었다. 사물을 찍어주는 기계라고 하자 그런 것도 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로 이해하긴 좀 어려웠는지 렌즈에서 눈길을 쉬이 떼지 못한다. 집에 카메라가 있었던가. 짐 정리 하다가 어디서 본 것 ..
05.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창 너머로 내리쬐는 햇빛이 따듯하다. 냉기가 돌던 어젯밤과 달리 따스한 햇볕이 거실 마루를 적신다. 침대에 고이 잠든 남자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소파와 씨름하다 이불을 끌어안은 채로 잠이 들었고, 혹 감기에 걸릴까 싶어 남자를 침대 위로 살짝 옮겨주었다. 깊게 잠들었던지 갑자기 바뀐 잠자리에도 깨거나 뒤척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자기엔 약간 작은 감이 있어 저는 남자가 갖고 놀던 소파에서 눈을 붙였다. 쿠션을 베고 잔 덕에 목이 결리긴 했지만 움직이는데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물로 눌러 내리곤 남자를 깨우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색색 거리는 얕은 숨소리가 남자의 단 ..
04.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현관에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가 저희를 반겼다.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따듯하던 실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차게 얼어붙었다. 신을 벗자마자 놀고 있던 난방기로 달려들었다. 저보다 더 얇게 입은 남자를 이대로 두었다간 다음날 병원을 드나드는 데 하루를 써버릴지 모른다. 조금 훈훈할 정도로 온도를 높이곤 발아래 치이는 박스들을 대충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신기한지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는 저 남자를 이젠 어찌해야하나 싶다. 어떻게 데려오기는 했다만 그냥 밥 주고 하루 재워 보내기만 하면 끝인 걸까.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상황에 이젠 두 손 두 발 다 들기로 했다. 일단 옷이라도 좀 입혀야 할 것 같아 들고 온 캐리어를 뒤적였다. 유품을 입힐 순 ..
03.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무작정 받긴 했다만 도통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 약지 정도에 알맞을 듯한 작은 크기. 남자의 손 사이즈에 맞춰진 터라 저의 손에는 잘 맞지 않아 보였다. 권하는 표정이 너무도 다급해 받긴 했다만 도대체 이것이 우리의 대화를 어떻게 이어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들여다 본 반지의 안쪽에는 읽을 수 없는 짧은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색으로 새겨진 작은 글자들은 마치 골동품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반지를 끼우고는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냐는 저의 표정에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말이 들려?” “들... 려요. 이게 어떻게...” 놀라움은 삽시간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남..
02.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뽀얗게 쌓인 먼지와 거미줄이 얼기설기 뒤섞여있다. 사람 온기가 닿지 않자 집주인의 빈자리가 다른 자취들로 채워졌다. 그나마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옷장마저 이름 모를 벌레들의 소굴이 된 것이다. 밀린 빨래에 허덕이던 어깨가 어째서인지 더 무거워졌다. 구겨진 이불을 툭툭 털어 정리한 후, 휘청거리는 몸을 거실로 겨눴다. 간밤에 불던 찬바람 탓인지 집 안이 조금 쌀쌀하다. 얇은 가디건을 꺼내기 위해 발에 차이는 박스들을 몇 개 집어 들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대충 던져놓은 것 같은데 이렇게 사람 손길이 부족해서야 언제 이 집을 다 정리하나 싶다. 봉투 안으로 옷가지들을 밀어 넣고,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벌레들을 잡다보니 어느새 해는 중천에 다다..
01. Atlantis Written by 콤타 (@acdemfks1234) 장사꾼들이 하나 둘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9시를 넘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가 주인들의 귀가를 재촉했다. 연이은 궂은 날씨가 마을 전체를 잠재운 것은 아닐까? 이 곳에 온지 이주일이나 지났건만 맑게 게인 하늘을 본 적이 없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마냥 내리치는 폭우에 있던 활기마저 다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창 밖에서 들리는 천둥소리에 고장 난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켰다. 열린 가게가 있어야 할 텐데. 붕 뜬 머리를 가리기 위해 구석에 던져 놓았던 캐리어로 다가갔다. 잔뜩 주름 잡힌 후드를 대충 뒤집어쓰고는 현관에 놓인 우산을 챙겼다. 뭔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허전한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