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logic

[솔부] Atlantis 05 본문

Atlantis

[솔부] Atlantis 05

콤타 2017. 1. 16. 17:47

05.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창 너머로 내리쬐는 햇빛이 따듯하다. 냉기가 돌던 어젯밤과 달리 따스한 햇볕이 거실 마루를 적신다. 침대에 고이 잠든 남자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소파와 씨름하다 이불을 끌어안은 채로 잠이 들었고, 혹 감기에 걸릴까 싶어 남자를 침대 위로 살짝 옮겨주었다. 깊게 잠들었던지 갑자기 바뀐 잠자리에도 깨거나 뒤척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자기엔 약간 작은 감이 있어 저는 남자가 갖고 놀던 소파에서 눈을 붙였다. 쿠션을 베고 잔 덕에 목이 결리긴 했지만 움직이는데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물로 눌러 내리곤 남자를 깨우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색색 거리는 얕은 숨소리가 남자의 단 꿈을 말해주는 것 같아 그를 깨우는 손길엔 미안함이 가득했다. 살살 흔들리는 어깨에 놀랐는지 남자가 천천히 눈을 뜬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데 아직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불에 몸을 파묻곤 칭얼거리는 남자의 모습이 퍽 귀여워 아침을 마저 차리고 깨울까 고민했다. 이왕 깨운 거 뭐 어쩔 수 없지. 얼른 일어나라며 등을 두들기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남자다. 언제 일어났어? 긴 시간 잠 들었던 그의 목소리는 볼품없이 쩍쩍 갈라졌다.

 

 “어서 일어나요. 해가 정수리에 걸렸네.”

 “그 정도는 아니야. 으- . 아직도 졸려.”

 

  그 새를 못 참고 다시 고꾸라지는 남자의 머리통. 다시 잠들 새라 남자의 손을 무지막지하게 흔들었다. 일어나요. 당신이 지금이 늦잠 잘 때에요? 흘러내리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곤 저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본다. 심통이 난 걸까. 천진한 얼굴로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바늘에 찔리는 것 마냥 얼굴이 따끔거린다. 뭘 쳐다보냐는 저의 시선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남자였다. 결국 실컷 보라는 마음으로 남자의 침대 맡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프링이 기울자 남자의 발도 힘없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아랑곳 않던 남자는 어째서인지 저를 보며 굉장히 뿌듯하단 얼굴을 하고 있다.

 

 “너 진짜 잘 생겼다. 뭘 먹고 그렇게 컸냐?”

 “아, 아침부터 무슨 소리에요.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참나. 칭찬해 줘도 싫대.”

 

  갑작스런 남자의 말에 괜스레 볼이 달아올랐다. 평소 거울을 즐겨 보는 편이 아닌지라 자신의 얼굴에 굉장히 무감각한 편이었다. 그런 저에게 턱하니 잘생겼다고 칭찬해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꽤 당황스럽다. 그래도 칭찬은 좋은 거니까 뭐. 아침부터 비몽사몽 거리는 사람에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며 남자의 머리에 수건을 얹어 주었다. 대충 씻고 나오면 아침 준비 시간과 얼추 맞아들 거다. 벽시계를 한 번 쳐다보자 남자는 군말 없이 샤워실로 걸어 들어갔다.

 

  한층 깨끗해진 얼굴의 남자는 저가 볶아준 고기와 야채를 야금야금 잘도 먹고 있었다. 남자가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 편이라 다행이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요리하는 저에게 호화스런 상차림은 큰 도전이고 부담스러움에 가깝다. 주식이 빵 뿐인 남자에게 깐깐한 손님의 입맛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배고팠는지 빠르게 비워지는 그릇들을 보며 남자를 슬쩍 쳐다보았다. 물을 건네주자 말없이 벌컥 들이킨다. 잘 먹어주는 건 너무 고맙다만 이제 어떻게 하실 건지. 약속된 하루는 다 지났다만 신명나게 먹어대는 남자의 얼굴엔 딱히 걱정이 없어 보였다. 믿을 만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나 무사태평이라니. 오히려 남자의 앞일을 염려하는 건 당사자도 아닌 숙식을 제공한 집주인이었다. 이 남자는 제 걱정을 알기는 할까. 무서운 속도로 먹어 치우던 남자는 갑자기 덜컥 그릇을 내려놓곤 저를 향해 외쳤다.

 

 “밖에 나가자.”

 

 

 

* *

 

 

  

 “나온 건 좋은데요. 무슨 계획이 있긴 한 거예요?”

 “아 왜. 나 시장 처음 와본단 말이야. 마을에서도 자주 못 가봤어.”

 “아니, 마을에 이런 곳이 없어요?”

 “있긴 한데 내가 못 갔지. 말했잖아. 사람들 엄청 몰린 다니까.”

 “시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얼마나 많길래 사람이 못 다닐 정도에요?”

 “원래는 적었는데 내가 나가면 많아지더라고.”

 

  머피의 법칙이란 건가. 그 전엔 아무도 없었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까 갑자기 사람이 많아지는 그런 거? 남자의 말에 그냥 그런가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몰림의 당사자는 골동품에 눈이 팔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으니 말해 무엇 하랴. 충동적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 시장은 생필품들 보단 악세사리나 책들이 많은 곳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면 시작되는 벼룩시장은 현지인들 보단 오히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저도 옛적에 와본 적은 있지만 딱히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 눈으로만 구경하고 마는 곳이었다. 때가 탄 하얀 담벼락 아래로 급하게 짜 맞춰진 나무 탁자들이 그득하다. 형형 색깔의 타일보로 몸을 숨기곤 화려한 브로치들로 자신을 치장했다. 테이블 하나마다 담겨있는 작은 상점들. 약간 지루해 보이는 상인들의 모습은 오히려 시장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나가는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아 두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저건 뭐야? 저기 저 네모난 거.”

 “파란 색깔 저거요? 레코드 말하는 거죠?”

 “레코드? 그게 뭐야?”

 “노래를 들을 때 쓰는 거예요. 저 기계 위에 올려놓으면 판이 돌아가면서 노래가 나와요.”

 

  남자가 가리키는 그 끝엔 작은 레코드점이 있었다. 전축기 옆으로 낡은 종이판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레코드를 뒤적이는 젊은 여성을 제외하곤 딱히 눈길 주는 사람이 없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꽤 오래된 느낌의 팝송. 노래에 매료된 건지 화사한 종이 색깔이 이끌린 건지 가까이서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의 눈길을 보니 돌아가는 길에 선물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자와 몇 마디 더 나누는 새에 여자는 레코드 값을 지불하곤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건 다 컵이야? 물 담는 거? 엄청 반짝거린다.”

 “유리라 그런 것 같아요. 가까이 가서 볼래요?”

 “유리? 그게 뭐야?”

 

  햇빛이 반사되는 그릇들은 남자의 말처럼 눈부시게 반짝 거렸다. 샛노란 색깔이 신기했는지 컵을 쥐곤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깨지지 않게 조심해요. 뒤집은 채로 컵 바닥을 보는 남자에게 넌지시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본다. 조심하란 말이 그렇게 놀라운 말인가? 당황한 저도 남자를 쳐다보자 컵이 깨지기도 하냐며 되레 질문을 던진다. 아니 유리니까 당연히 깨지죠. 원래 그렇지 않냐는 저의 말에 남자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린다. 컵을 테이블 위로 돌려놓곤 그런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며 방긋 웃는다. 남자의 마을에선 광물을 다듬어 컵을 만드는데 아무리 던지거나 밟아도 깨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높은 수압을 견딜 정도의 광물이라면 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유리처럼 반짝거리면서 절대 부서지지 않는 튼튼함이라. 뭔지는 몰라도 참 좋은 재료라며 가볍게 웃어 넘겼다. 잠깐 사이에 옆 테이블로 구경 가버린 남자는 이젠 저가 보이지도 않는 듯싶었다. 햇빛을 받아 옅은 황금빛이 나는 머리통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어린 동생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만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여기서 길 잃어버리면 답도 없는데 어쩜 저렇게 신이 났을까. 멀어지는 남자를 잡기 위해 속도를 올리려던 그 때 가만히 지켜보던 상인이 저를 슬쩍 붙잡았다.

 

 “꽤 자상하네.”

 “네?”

 “당신 말이야. 말도 못하는 데 용케 알아듣고. 그다지 친해보이진 않던데?”

 “실례지만, 누가 말을 못한다는 거죠?”

 “저기 뛰어가는 남자. 말 못하는 거 아냐? 입만 뻥끗 거리던데?”

 

  상인은 곁눈질로 앞서가는 남자를 가리켰다. 아무 생각 없이 나눴던 말들을 여자는 용케도 듣고 있었다. 문득 불쾌한 감정이 들어 상대를 쏘아 봤지만 내가 뭐 잘못 했냐는 눈빛으로 맞받아치는 여자였다. 저는 잘만 들리는 목소리가 왜 저 사람한텐 들리지 않았던 건지.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은 곧 제 손에 끼워진 반지로 향했다. 분명 통통 거리는 목소리로 제게 이게 뭐냐 묻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듣지 못했던 걸까. 벌써 남자에게 익숙해진 듯 둘 사이의 간극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여자의 말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번쩍 정신이 든다. 아무 말 없는 저의 행동에 여자는 더 짙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온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당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보란 듯이 환하게 웃어주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여자의 말 한 마디에 온갖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걸으면 걸을수록 가슴이 울렁거린다. 무서웠던 걸까? 남자가 저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압도적인 존재에 대해 남모를 두려움을 갖게 된 걸까. 되뇌어진 질문들은 머리가 아닌 저의 가슴을 향해 있다. 아니. 이건 아니다. 처음 그 순간부터 남자를 향한 저의 감정은 무서움 보단 호기심에 가까웠다. 저가 마주한 이 사람이 어쩌면 특별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말 못할 간지러움. 그렇다면 입 안을 게워내고픈 이 씁쓰름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들켜지는 것이 두려웠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여자의 말을 가벼이 받아 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그의 행동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고, 저는 여자의 오해에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잠깐, 화? 분노? 모든 의문들의 정답이 문득 머리를 스쳐간다. 대체 저가 왜? 이유 없는 여자의 무례함 때문에? 남자의 사연도 모른 채 둘 사이의 관계를 헤집는 그 건방진 태도에 화가 났던 걸까. 끝없이 이어지는 실타래에 좋았던 기분이 땅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이유모를 불쾌함, 이유모를 우울함. 급격하게 오르내리는 저의 감정이 오늘따라 마음대로 따라주질 않는다.

 

 “안 오고 뭐해?”

 “아, 언제 왔어요? 미안해요. 잠깐 딴 생각 좀 하느라.”

 “아니 뭐 미안할 것까지야. 하도 안 보이 길래 어디 갔나 했지.”

 “구경은 다 했어요? 갖고 싶은 거 있으면 하나 정돈 사줄 수 있는데.”

 

  텅 빈 시야 안으로 남자가 빼꼼 고개를 들이민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남자의 행동에 살짝 뒷걸음질 쳤다. 얼굴 그렇게 다가오면 놀라잖아요. 저의 꾸중에도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는 듯 방긋방긋 웃음을 띠우는 남자다. 시장이 나름 재밌었는지 집 안에 있을 때보다 얼굴이 한 층 밝아 보였다. 고향에 대해선 딱히 말이 없는 거 보니 아무래도 며칠 더 데리고 있어야겠구먼. 이왕 이 곳에 있을 거 다른 곳도 좀 데리고 다녀야겠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톡톡 튀는 웃음소리에 약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신경 쓰지 말자. 정체 모를 불쾌함이 싫어 남자의 말에 더 집중했다.

 

 “어, 갖고 싶은 거? 음. 하나만 고르려니 어렵네.”

 “지금 두 개 사달라는 거죠?”

 “아니, 진짜로 어려워서 그래. 너 없어서 혼자 돌아다니다 왔단 말이야.”

 “와, 나 버리고 혼자서요? 엄청 섭섭하네요.”

 “야, 그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잖아.”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니 금방 시무룩한 얼굴을 한다. 남자의 반응이 재밌어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여기서 더 했다간 놀라 울지도 모른다. 표정을 풀곤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이 진짜 저 없는 새 시장을 한 바퀴는 돌고 온 모양이었다. 그거 기다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문득 억울함이 들어 남자를 내려다본 순간 마음을 굳힌 듯 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유리병! 아까 그거 갖고 싶어.”

 “그 반짝이는 거요? 여기까지 왔는데 더 좋은 걸로 하지 그래요.”

 “싫어. 그게 제일 좋아. 갈색으로 덮여 있던 거.”

 “갈색으로 덮인 게 뭐죠? 어디서 봤는데요?”

 

  저의 질문에 말없이 손을 잡아끈다. 아까 들어오던 방향에서 왼쪽으로 꺾자 한 남자가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하얀 천으로 와인 잔들을 닦고 내려놓길 반복하고 있었다. 쫄래쫄래 그 테이블로 뛰어가서는 작은 병 하나를 내게 가리킨다. 코르크로 막혀 있는 중간 크기의 유리병.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는 평범한 유리병을 보니 이걸 어디에 쓰려는 지 종잡을 수 없었다. 워낙 갖고 싶어 하니 사주긴 한다만, 더 좋은 걸 선물하려던 저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했다. 값을 치루고 남자의 손에 병을 쥐어주니 선물을 받은 아이마냥 크게 기뻐했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요. 머쓱해진 기분에 한 마디 하자 그래도 고맙다며 제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 댄다. 아야, 팔 빠져요. 그제야 힘을 뺀 남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장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따라가며 병을 어디다 쓸 건지 물어봤지만 남자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하, 비밀이라 이거지. 소심한 마음에 더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그걸 알아낸들 저가 어쩌겠냐 싶어 그만 두었다. 앞서가던 남자는 짧은 보폭 때문에 금세 저에게 따라잡혔다. 저가 먼저 갈 거라고 바득바득 뛰어올 걸 알기에 슬그머니 걸음을 늦췄다. 살짝 뒤돌아보니, 예상대로 유리병을 꼭 쥔 남자는 저를 앞지르겠다고 열심히 발을 굴리고 있었다. 귀여워. 그와 발맞춰 걷는 이 시간에도 해님은 우리의 머리 위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

황금과 다이아가 아틀란티스의 가장 흔한 재료였다죠? 아마.

전개속도 이상하지만 전 아무것도 몰라요 *^^*

'Atlant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부] Atlantis 07  (0) 2017.01.24
[솔부] Atlantis 06  (0) 2017.01.20
[솔부] Atlantis 04  (2) 2017.01.13
[솔부] Atlantis 03  (0) 2017.01.10
[솔부] Atlantis 02  (0) 2017.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