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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ntis

[솔부] Atlantis 03

콤타 2017. 1. 10. 21:48

03. Atlantis

Written by 콤타 (@comtar34)

 

 

 

  무작정 받긴 했다만 도통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 약지 정도에 알맞을 듯한 작은 크기. 남자의 손 사이즈에 맞춰진 터라 저의 손에는 잘 맞지 않아 보였다. 권하는 표정이 너무도 다급해 받긴 했다만 도대체 이것이 우리의 대화를 어떻게 이어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들여다 본 반지의 안쪽에는 읽을 수 없는 짧은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색으로 새겨진 작은 글자들은 마치 골동품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반지를 끼우고는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냐는 저의 표정에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말이 들려?”

 “들... 려요. 이게 어떻게...”

 

  놀라움은 삽시간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남자의 목소리가 마치 모국어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생경한 상황에 이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남자는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남자는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몸에 붙은 모래들을 털어내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약간 윙윙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렇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대충 몸을 정리한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마치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기가 어딘지 계속 묻고 있었거든. 전혀 못 알아들었는데 이제야 좀 편해졌네.”

 “아.. 여기는.. 리스본인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시겠어요?”

 “나야 모르지. 이제 도착했는걸.”

 

  이제 도착했다고? 남자의 말은 이으면 이을수록 갈무리 할 수 없었다. 마치 바다를 건너 이곳에 도착했다는 말투에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정신이 나간건가? 아니면 옆에 있는 항구 쪽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말인가? 머릿속에서 되뇌지는 수 만 가지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아마 당황스러운 상황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된 걸지도 몰랐다. 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겉보기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크게 다치거나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건강하다는 듯 해변을 거니는 모습에 당혹스러운 건 다름 아닌 저였다. 게다가 동양인이 낯선 이 동네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바다를 기어 나온 이 남자는 정말이지 어떤 해석으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길을 잃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를 주변 경찰에게 데려다 주고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저기.. 실례지만 길을 잃으신 건가요? 이 근방에 경찰서는 없거든요.”

 “경찰서? 음, 길을 잃은 건 맞아. 이렇게 무턱대고 성공할 줄 몰랐거든. 근데 넌 누구야?”

 “아.. 저는 잠깐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느라... 이곳에 왔거든요.”

 

  눈을 말똥하니 뜬 채로 저를 바라보는데 왜인지 모르게 말이 어수룩해졌다.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에 문득 입이 막힌 걸까.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남자는 젖은 머리가 빠르게 말라가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다만 밝은 갈색의 머리인 것 같았다. 남자는 낯선 이가 훑어 내리는 눈빛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리스본이 어디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원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고 정신없어?”

 “아니요. 지금은 야시장 때문에 그런 거예요. 조금 있으면 한산해져요.”

 “시장이라니 재밌겠다. 그런데 잘 못 가봤거든. 어디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아.. 그런데.. 죄송한데 어디서 오신 건지.. 여긴 항구가 아니라 바다로 사람이 들어올 수가 없는데.”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 상황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 아직 정체도 모르는 남자와 대화를 이어가는 저도 참 놀라웠지만 마치 친구처럼 말을 놓는 남자의 자연스러움 또한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의 질문에 남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혹시 불법 체류 같은 걸까? 입고 있는 옷은 번듯한데 여기 사람이 아닌가? 혼자만의 망상이 가지처럼 뻗어갈 무렵 남자는 지평선 너머를 가리키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난 저- 기서 왔지. 신전 너머에서. 오래 걷느라 좀 힘들긴 했는데 괜찮았어.”

 “신전 너머요? 이 주변에는 신전이라 불리는 곳이 없는데?”

 “그 곳을 몰라? 여기 사람들은 도대체 뭘 기준으로 영토를 정하는 거야?”

 “아니, 그 전에, 대체 어디서 오셨기에 신전이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여긴 그런 곳이”

 “아틀라스. 난 그곳에서 왔어.”

 

  남자의 터무니없는 말에 숨이 턱 막혀버렸다. 단순히 길을 잃은 것 같아 도와주려고 했더니 이 남자는 그저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걸까. 어이없는 대답에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호감마저 다 식어버리고 말았다. 뭐야, 진짜 사기꾼이었잖아.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타령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한심함을 넘어 불쌍함이 느껴졌다. 진짜 뭐하는 거야 시간만 다 버렸네. 본심이 얼굴에 묻어났는지 저를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 또한 이상해졌다. 뭘 그렇게 보냐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데 이런 웃긴 말장난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무시하고 가버리는 게 상책인걸까. 어디 다친 곳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두고 가도 누가 신경이나 쓸까.

 

 “진짜야. 네가 뭐라 믿든 내 고향은 변하지 않아.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아니, 요즘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가 믿어요. 장난도 아니고.”

 “네가 손에 낀 거. 거기 적혀 있는 거 안 보여?”

 

  반지? 남자의 말에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제야 아까 반지를 낀 상황을 기억해냈다. 이렇게 대화할 때 까지 상상조차 못 할 우연들이 반복되었는데 저는 그것에 굉장히 자연스럽게 반응했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반지를 빼내자 놀랍게도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입을 뻥긋거리고는 있었지만 귀에 닿는 소리는 파도가 부딪히는 바다소리 뿐이었다.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저를 째려보는 남자의 모습에 이제야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짜 아틀라스에서 왔다고? 그건 신화잖아. 이 사람 진짜 장난치는 게 아니라고? 배로 어지러워진 머리가 전혀 정리되질 않는다. 백 번 양보하여 이 사람이 그곳에서 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저가 뭘 어찌할 텐가? 이 사람을 경찰에 데려다주며 ‘아틀란티스에서 왔답니다.’ 라고 말한다면 정신이상으로 철창에 들어가는 건 남자가 아니라 저일 것이다. 일단 진정하는 게 먼저다. 조급하면 지는 거야.

 

 “일단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온지는 몰라도 여긴 유럽 끝 쪽에 있는 작은 도시에요. 내가 바다에 쓰러져 있는 당신을 발견했고 다친 것 같아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지금 보기엔 병원보단 경찰서가 먼저지만 당신이 그곳에서 왔다고 한들 누가 믿어주겠어요. 여기선 그저 신화 속 도시일 뿐인데. 저기요,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라니까요?”

 

  저의 말에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파도에 발장난을 치는 남자다. 아무리 봐도 묵을 숙소나 노잣돈이 있어보이진 않는데 어떻게 이 밤을 보낼 건지 계획조차 없는 듯했다. 본인 말로는 타지에서 왔다고 하는데 관광이 돈 되는 도시에서 누가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하겠느냔 말이다. 순간 흠칫한 생각이 들어 빨리 남자를 경찰서로 보내야한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밤도 깊어 가는데 밤바람이 찬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간 다음날 독감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저기요. 일단 경찰에 연락해 둘게요. 여기서 기다리셨다가 그 분들이랑 같이...”

 “나 여기 어딘지 몰라. 경찰이 뭔지도 모르겠고. 하루만 재워주면 안 돼?”

 “아니, 저기,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어떻게”

 “오늘 당장은 못 돌아간단 말이야. 어떻게 가야하는 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당당한 부탁 아닌 부탁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인 줄은 알고 이러는 걸까. 뻔뻔하게 잠자리를 부탁하는 남자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표정이었다. 설마 하던 일이 진짜로 벌어지게 되니 화보단 탄식이 먼저 흘러나왔다. 그냥 경찰에 신고하고 튀자는 못난 마음이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사람을 두고 가는 건 도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어떻게든 설득시켜야 했다. 우리 집 말고 경찰서로 가시라는 자상한 설득.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전 당신이 누군지도 모른다니까요? 누가 낯선 사람한테 방을 내주고 옷을 내줘요. 요즘 세상에.”

 “우리는 그래. 타지 사람한테 옷 주고 밥 주고 한단 말이야. 그냥 놀러온 사람일 뿐인데 왜 이렇게 경계하는 거야?”

 “그건 그 쪽 동네 사정이구요. 이쪽 동네는 모르는 사람한테 뭐 빌려주고 그러지 않아요.”

 

  저의 단호한 표정에 남자도 점점 할 말을 잃어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상식 아닌가. 남자가 있던 곳이 얼마나 정이 넘치는 곳인지는 몰라도 저는 그렇지 않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함부로 집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누가 그런 자선 행위를 발 벗고 나선단 말인가. 도와준다는 것을 입으로만 하는 것 같아 양심에 찔리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 생각한다. 매사에 조심하는 성격인 저에겐 남자의 말은 이해하기도 힘들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남자는 저의 철통같은 방어에 손도 못쓰고 백기를 들어야 했다.

 

 “부탁이야. 좀 도와줘.”

 

  진지하게 도움을 청하는 남자의 모습은 양심에 꽂힌 바늘을 더 깊게 만들었다. 솔직히 이 모든 것이 꿈은 아닐까 하는 상황에서 이젠 집에까지 저 남자를 데려간다는 것은 저가 세운 기준들이 모두 어그러지는 것과 같았다. 또한 데려간다 한들 저 남자가 돌아갈 때까지 계속 붙어 있어야 하는,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지 않은가. 아무리 자신의 동네는 자비심 넘쳤다 해도 저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나는 장발장에 나오는 그런 선량한 신부가 아니니까. 다음날 아침 현금과 여권이 없어져있는 그런 끔찍한 상상으로 밤을 보내고 싶진 않다.

 

 “제발. 난 거짓말쟁이가 아냐. 정말로 난 아틀라스에서 왔다고.”

 “당신이 어디서 오든 저는 누굴 재워줄 생각이”

 “우린 이유 없이 상대를 헤치지 않아. 왜 믿지 않는 거야?”

 “아니, 그건 알겠는데 제가 그럴만한 여유가”

 “정말이야. 돌아가는 방법을 전혀 모르겠는걸.”

 

  저를 향해 외치는 남자의 말에 점점 죄책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저의 말을 탓하거나 비난할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진실로 방법을 모른다는 남자의 모습은 안쓰러움과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버리니 점점 커지는 당혹감을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었다. 완전히 의심을 지운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남아있는 것도 옷가지 밖에 없는 집이라면 하루쯤은 괜찮지 않을까. 첫 만남이 거창했을 뿐이지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해맑기만 한 사람이었다. 점점 기울어지는 마음에 스스로를 다잡으려 해도 천성을 눌러 버리는 동정심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안타까움을 갖는 것은 매우 큰 실례지만 집도 옷도 없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더 큰 실례가 아닐까. 결국 이런저런 생각에 휘둘리다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알았어요. 이번 한 번 만이에요.”

 

  그제야 맑아지는 남자의 표정에 그냥 소탈한 웃음 한 번 내비치고 말았다. 여기서 더 왈가왈부 해봤자 데려가기로 한 결정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안심한 얼굴로 쫄래쫄래 뒤따라오는 모습이 꼭 한국에 두고 온 강아지마냥 귀엽기도 했다. 사실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이 걸리기도 했지만 유품을 정리하기 전까지라면 크게 불편할 점도 없을 것이다. 집으로 안내하는 내내 낯선 이에 대한 걱정과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지만, 한 번 결단 내린 것을 번복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내일 아침에도 자신이 아틀라스에서 왔다고 한다면 두말 않고 경찰서에 보내 버려야지 다짐했다.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은 사람을 집까지 끌고 들어오는 저의 모습에 그저 고개를 젓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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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처음이라 전개 속도 개빠름. 나도 모름.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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