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logic
[솔부] Atlantis 01 본문
01. Atlantis
Written by 콤타 (@acdemfks1234)
장사꾼들이 하나 둘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9시를 넘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가 주인들의 귀가를 재촉했다. 연이은 궂은 날씨가 마을 전체를 잠재운 것은 아닐까? 이 곳에 온지 이주일이나 지났건만 맑게 게인 하늘을 본 적이 없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마냥 내리치는 폭우에 있던 활기마저 다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창 밖에서 들리는 천둥소리에 고장 난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켰다. 열린 가게가 있어야 할 텐데. 붕 뜬 머리를 가리기 위해 구석에 던져 놓았던 캐리어로 다가갔다. 잔뜩 주름 잡힌 후드를 대충 뒤집어쓰고는 현관에 놓인 우산을 챙겼다. 뭔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지만 텅 빈 거실엔 시선 닿을 것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열쇠는 챙길 필요가 없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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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사이로 바다 내음이 전해진다. 상상했던 푸른빛 바다나 눈부신 백사장은 아니었지만, 코에 닿는 이 냄새만은 내가 이 곳에 있음을 실감토록 했다.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였더라? 4년 전? 5년 전? 이토록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것에 나의 무심함을 탓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너무 멀잖아. 10시간이 넘었던 비행시간과 정반대인 시차 때문에 근 일주일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머니는 어떻게 여길 다니셨던 건지 게으른 아들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며 얼마간 걸었을까 아직 문 닫지 않은 슈퍼가 눈에 띄었다. 며칠 분량의 빵을 한 번에 사들이니 가게 점원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나름의 사정 아니겠어요? 대충 눈웃음으로 무마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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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관광지로 유명한 이 도시는 우리 어머니의 고향이다. 약 20년 전, 어머니는 이 곳에서 만난 동양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과 동시에 나를 낳으셨다. 당시 유학 중이었던 아버지는 내가 9살이 되던 해에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따라 어린 아들과 함께 한국행을 결심하셨다. 먼 이국으로 하나뿐인 딸을 보내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음에도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축하해 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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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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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어부였다. 대서양 위에서 한 평생을 보낸 그는 아마 육지에서 생활한 시간보다 바다 위에서 배를 탄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늘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그의 고된 시간을 대변해 주었다. 힘든 뱃일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건 언제가 그의 작은 어선으로 세상의 모든 바다를 누비겠다는 작은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온 노인은 결국 죽을 때마저도 땅이 아닌 바다의 품을 선택했다. 가루가 되어 가라앉던 그의 마지막 모습이 아마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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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땅을 떠나기 전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의 나와 함께였다. 부모님이 바쁘실 때면 홀로 남은 손자를 돌보기 위해 몇 번이고 험한 바닷길을 오다니셨다. 어린 아이의 잠투정을 달래던 그 고운 손길을 나는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매일같이 그물을 다듬느라 거칠고 투박해진 손. 다만 내 이마에 닿는 온기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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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을까 어릴 적의 나는 꽤나 응석이 심했다. 지금처럼 비바람이 부는 날엔 아예 할아버지 침대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겁 많음에 대해선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울먹거릴 때면, 할아버지는 나를 달래 주기 위해 짧은 동화 한 편을 들려주셨다. 하루는 피노키오 하루는 잭과 통나무. 꼬마 소년의 어리석은 호기심으로 큰 화가 닥쳐오지만 결국 주인공의 능력으로 힘든 역경을 이겨낸다는 지루하고도 꿈만 같은 이야기. 그의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주인공마냥 들뜨고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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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손에 들린 빵 봉지는 테이블 위로 던져두었다. 귀찮음을 무릎 쓰고 사왔건만 막상 먹으려하니 입맛이 돌질 않는다. 사방으로 쳐진 커튼이 방 안에 침입자를 잠식시키려는 걸까. 부엌을 나오자 갑갑함에 목이 죄인다. 거실 중앙에 걸린 액자에는 할아버지와 나,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나 커버렸는데 사진 속 당신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어른이 되면 함께 바다에 나가자던 당신의 약속은 너무나 쉽게 깨져버렸다. 늦어서 미안해요. 마지막조차 지키지 못했던 나를 용서하세요. 얹혀오는 느낌이 싫어 무작정 발코니로 향했다. 항구 가까이에 위치한 곳이라 속이 답답할 때면 언제나 이 곳을 찾았다. 바다 바람을 맞자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예전에는 내 키보다 컸던 손잡이가 이제는 허리를 조금 웃도는 높이였다.
‘바다는 언제나 신비한 것들로 가득하지. 내가 아는 건 그들의 이름과 생김새가 고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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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바다에 나갔던 할아버지가 정체 모를 그릇을 주워 오신 적이 있었다. 그냥 버려진 그릇이라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그 낡은 그릇을 무척이나 애지중지 하셨다. 푸른 바탕에 금색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진 모습. 그게 뭐냐는 내 질문에 연신 웃음을 띤 채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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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분명 장식용으로 사용하던 그릇일게다. 단순한 쓰다 버려진 것이라고 하기엔 여기 새겨진 문양이 너무 아름답구나.’
‘누가 쓰던 건지도 모르는데요?’
‘글쎄. 오래 전에 살던 사람이거나, 아니면 바다 속에 사는 누군가의 것 일수도 있지.’
‘바다 속에 사는 건 물고기뿐이잖아요. 할아버지는 거짓말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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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손자의 퉁명스런 대답에도 할아버지는 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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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세상엔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아주 많이 있단다. 우리가 상상이라고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실로 뒤바뀔 수도 있는게지.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말이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내 곰돌이 인형이 사실은 살아있다는 건가요?’
‘음,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 상상이란 늘 모든 것을 초월하니깐 말이다. 다만 솜뭉치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인 것 같구나.’
‘더 모르겠는걸요. 할아버지 말은 너무 어려워요.’
전혀 모르겠다는 내 표정이 우스웠는지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껄껄 웃으셨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흰머리와 달리 그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7살의 머리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그냥 할아버지의 장난이겠거니 가벼이 넘겨 버렸다. 상상과 망상. 나는 아직까지도 그 모호한 차이에 대해 정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가 내게 전하고자 했던 건 단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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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도 상상을 하나요?’
‘응?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구나.’
‘아빠가 그러셨어요. 어른들은 헛된 상상을 하지 않는다고. 할아버지는 어른이잖아요?’
‘맞아. 할아버지는 어른이지. 그렇다고 해서 상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란다. 더 잘 되기를, 더 좋게 풀리기를. 꿈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지만 결국 우리들은 저마다의 상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잖니?’
‘그럼 할아버지의 상상은 뭐죠? 더 큰 배를 갖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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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 그게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인지 말해봤자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계산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긴 시간이 걸릴 만큼 할아버지에게 쉬운 질문이 아니었음은 확실했다. 역시 꼬마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대답이었던 걸까. 아무런 말이 없는 그의 모습에 어린 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오히려 걱정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할아버지는 어떠한 화도 짜증도 내지 않으셨다. 달싹이던 그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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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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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로 뒤엉킨 할아버지의 서재에는 대서양을 그려놓은 지도들 위로 정체모를 책과 종이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그 방은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자주 들어가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책들 때문이었다. 낡은 가죽 표지는 제 본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큼지막하게 박힌 표제만큼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 그 때는 그 단어가 무얼 의미하는지조차 몰랐기에 가볍게 지나쳤지만, 다 큰 어른이 되고나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역사를 좋아하거나 유적을 찾고 다니는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단순히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그물 쳐서 하루를 먹고 살았던 평범한 남자가 어째서 존재의 여부조차 불분명한 설화 하나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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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할아버지는 저 깊은 바다 속에서 무엇을 찾고자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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